새해를 맞이하여, 날짜에 맞춰 『주님은 나의 최고봉(My Utmost For His Highest), 오스왈드 챔버스』와 이에 대한 『김병삼 목사의 매일만나』 유튜브 채널의 "주님은 나의 최고봉" 말씀을 듣고 새벽기도하는 것으로 정했습니다. (이하, 주나최)
오늘은 주나최 1월 14일 자 말씀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는 귀 "로 묵상하고 기도드립니다.
책만 보아도 될 것 같지만, 신앙적으로 초보이다 보니, 책을 잘못해석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해서 김병삼 목사님의 해설을 같이 듣습니다. (다만, 금일은 유튜브 연결이 잘 안 되어서 책만 읽고 묵상했습니다.)
묵상 요약
오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방식에 대한 것입니다.
이사야 8장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이 구절에 대해 챔버스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직접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이사야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누가 우리를 위해 갈꼬?" 하나님의 부르심은 어떤 특정한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나의 부름을 받아라"라고 강압적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누가 우리를 위해 갈꼬?"라고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그 조용한 음성은 누가 듣는 것일까요?
내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거나 못 듣는 것은 내 귀의 상태에 달린 것입니다..(중략)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은 입은 자는 적으니라 - 마 22:14 "
오직 소수의 사람만이 택함 받은 자임을 입증합니다.
택함을 받은 자는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들어가
그들의 성향이 바뀌고 귀가 열리며
언제나 들려오는 아주 조용하고 작은 소리인 "누가 우리를 위해 갈꼬"라는 주의 음성을 들은 자들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언제나, 모든 사람을 위해 들려오지만, 오로지 소수의 택함을 받은 자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택함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를 따라오라 - 마 4:19 "는 조용하지만 적극적인 주의 음성은
오직 매 순간 깨어있는 영혼에게만 들렸던 음성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통해 하나님을 기꺼이 뵙는다면
우리도 이사야가 들었던 아주 작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도 완전한 자유함 가운데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보내 주 서서"라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오직 매 순간 깨어있을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그 부르심에 응하게 됩니다.
김병삼 목사님의 해설에 따르면, 챔버스도 부르심을 구분하기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미술학도로 주님께 헌신하려고 했으나,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 후에 1차 세계대전 중 이집트의 자이툰 부대로 보내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었고 그에 순종했을 때, 그 부르심이 성취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귀도 필요하지만, 하나님의 음성인지 분별할 수 있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그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까요?
여기부터는 김병삼 목사님의 해설이 주를 이룹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전기 『순종』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부르심은 어떤 특별한 때 우리의 삶에서 들려지는 것이 아니라,
늘 음성을 듣는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서 삶을 결단할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내가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실 말씀을 들으리니 - 시편 85편 8
자신의 내면에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 사무엘상 3장 9절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위로의 말씀을 받는 영혼은 복이 있습니다.
내면의 것에 깊이 들어가고 하늘의 비밀을 알기 위해 매일 훈련함으로써
자신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기쁘게 시간을 내고 세상의 모든 방해물을 떨쳐버리는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이런 예화가 있습니다.
뉴욕에 사는 친구와 인디언 친구가 뉴욕의 마천루 사이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때 문득 인디언 친구가 "풀벌레 소리가 난다"라고 말합니다.
뉴욕 사는 친구는 인디언 친구가 작은 소리를 잘 듣는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인디언 친구는 주머니에서 작은 동전 하나를 꺼내 바닥에 던집니다.
"또로롱" 소리가 나자 주변의 많은 모든 사람이 고개를 돌려 동전을 봅니다.
인디언 친구는 "나는 숲 속 생활을 오래 해서 바람과 숲과 물과 벌레 같은 자연의 소리를 듣게 되었어"
사람은 자신에게 익숙한 것을 듣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미세하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놓치게 됩니다.
열왕기상 19장 엘리야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열왕기상 19장
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12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13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하나님께서 먼저 강압적으로 엘리야에게 지시하신 것이 아니라,
바람과 지진과 불 속에서 엘리야는 하나님이 세미한 음성을 듣고, 굴 밖으로 나와 하나님 부르심에 응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가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을 듣습니다.
나의 묵상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을 들을 수 있을까요?
저에게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이 문제처럼 느껴집니다.
제가 먼저 하나님을 찾아야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것인지,
먼저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서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것인지..
전자라면, 나의 의지로 내가 나의 의지로 언제까지 지치지 않고 신앙생활을 지속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은혜를 받고 강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로 그렇게 된 것일까요?
후자라면, 그 은혜는 언제 저에게 내리는 것일까요? 그 은혜가 저에게 내리지 않을 수도 있을까요?
가롯 유다도 그 은혜를 받지 못해서 예수님을 배신한 것일까요?
오늘 말씀은 늘 해왔던 고민에 고민을 더해줍니다.
근데, 방금 그냥 피식 웃었습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요. 지금 당장 이 블로그 지우고, 내가 헛짓을 했다며 그만할까요?
어느 것이 맞는지 계속 공부하고, 말씀 듣고, 성경 일고, 기도해 보는 수밖에요.
죽을 때까지 몰라도, 죽은 후에는 알게 되겠죠.
아버지, 제가 조급하지 않게 해 주세요. 지치지 않게 해 주세요.
계속해서 하나님을 찾으며 살게 해 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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