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이하여, 날짜에 맞춰 『주님은 나의 최고봉(My Utmost For His Highest), 오스왈드 챔버스』와 이에 대한 『김병삼 목사의 매일만나』 유튜브 채널의 "주님은 나의 최고봉(주나최)" 말씀을 듣고 새벽기도하는 것으로 정했습니다.
오늘은 주나최 2월 22일 자 말씀 "영적 불굴의 자세"로 묵상하고 기도드립니다.
책만 보아도 될 것 같지만, 신앙적으로 초보이다 보니, 책을 잘못해석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해서 김병삼 목사님의 해설을 같이 듣습니다.
시편 46편
10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말씀 요약
1. 인내와 불굴의 차이
불굴은 인내보다 더 많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것이 반드시 실현될 것이라는 절대적인 확신과
그 소망을 바라며 인내하는 것이 합쳐질 때, 이를 불굴이라고 합니다.
불굴은 실패할까 두려워 매달려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그의 영웅이 패배하지 않을 것을 강하게 믿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음성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냥 견디라는 음성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결코 패배하지 않으신다는 확신 가운데 구체적으로 일을 진행시켜 나가라는 음성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시편 46편 10절의 배경은 유다 왕 히스기야 시대에 앗수르 군대가 침략한 때로 추정됩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강력한 적군에 맞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기 속에 놓여 있었습니다.
히스기야 왕을 중심으로 온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결국 승리한 사건에 대해 하나님께 찬송하며 감사하는 내용입니다. 이것이 영적 불굴이 아닐까요?
한 줄 노트1
인내가 그저 참아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라면, 불굴은 패배하지 않을 것이라는 굳은 믿음으로 소망을 붙들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2. 불굴에도 불구하고 고난이 찾아왔다면
아무리 불굴의 의지가 있어도 고난은 힘들고 아픕니다.
만일 당신의 소망이 지금 난관을 겪고 있다면, 이는 그 소망이 정결케 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고결한 꿈과 소망은 반드시 실현됩니다.
정결케 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이 난관을 통해 진정한 소망인지 알게 된다는 것이 아닐까요?
켈빈 신학대학원 총장을 지낸 코넬리우스 플랭크 주니어의 글을 보겠습니다.
중세 시대에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절망을 대죄로 여겼다.
그러나 어리석은 낙관주의도 역시 치명적인 죄이며
그것을 기독교적 소망으로 대체하려는 시도도 마찬가지 죄이다.
낙관주의는 걱정하지 마. 그 일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어라고 말한다.
그러나 소망은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끝까지 사태를 다룰 수 있는 보다 훌륭한 능력을 갖게 될 거야라고 말한다.
낙관주의는 기운을 내라고 말하고 소망은 하나님을 바라보라. 너의 구원이 다가가고 있다고 말한다.
기독교의 소망은 광야에서 사막에서 유랑 생활 중에 선물로서 우리들에게 다가온다.
그것은 백일몽이 아니다. 그것은 완전한 현실을 대면해야 하는 미래를 향하여 분투하는 소망을 동반한 믿음이다.
기독교적 소망은 아브라함과 같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랄 수 있으며 고난 중에 인내하는데, 인내는 인격을 낳고 인격은 소망을 이룬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이러한 소망의 묘지에서도 우리를 실망 주시지 않는 하나의 중심적인 소망을 굳게 붙잡는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리가 받을 자격이 없고 바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신 그분 안에서 집약된 소망 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고난』
자 한번 생각해 봅시다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많은 자손을 약속하시고
그 긴 기다림의 시간을 갖게 하셨을까요?
생물학적으로 아브라함과 사라의 가능성이 다 끊어진 가운데서 소망을 붙들 때 비로소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소망을 정결케 하시는 기다림의 시간이 아닐까요?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 계 3:10"
한 줄 노트2
기다림의 시간을 통해 우리 소망의 정체가 분명해집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묵상 질문!
지금 당하는 고난이 있습니까? 그 고난이 소망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까?
나의 묵상
오늘 묵상에서는 소망이 정결케 된다는 것과, 마지막 아브라함의 소망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 깊습니다.
진짜 소망은 고난 속에서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난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소망이 피어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고난은 피하고 싶은 것이지만, 그 안에서 하나님께 대한 소망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은 축복일 것입니다.
주님, 인간적인 마음은 고난을 피하고 싶게 합니다.
주님께 다가가려는 마음은 고난을 반기고, 그것을 극복하게 합니다.
그 안에서 저도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고백할 수 있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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