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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기도, 묵상/주님은 나의 최고봉(2024년 새벽기도)

[2024-02-24][주나최] 희생의 즐거움

by 우공81 2024. 3. 6.

새해를 맞이하여, 날짜에 맞춰 『주님은 나의 최고봉(My Utmost For His Highest),  오스왈드 챔버스』와 이에 대한 『김병삼 목사의 매일만나』 유튜브 채널의 "주님은 나의 최고봉(주나최)" 말씀을 듣고 새벽기도하는 것으로 정했습니다.
오늘은 주나최 2월 24일 자 말씀 "희생의 즐거움"으로 묵상하고 기도드립니다. 
책만 보아도 될 것 같지만, 신앙적으로 초보이다 보니, 책을 잘못해석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해서 김병삼 목사님의 해설을 같이 듣습니다. 

https://youtu.be/OYDUVhO6oRY?si=Wh68RTXZRM5Z2Vrv
고린도후서 12장
15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하므로 재물을 사용하고 또 내 자신까지도 내어 주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사랑을 덜 받겠느냐

 

말씀 요약

1. 일치된 관심

어제 섬김의 결단에 대해 묵상을 했습니다. 오늘은 섬김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해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안에 부으실 때
우리 마음은 다른 사람을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관심과 일치하게 됩니다.
희생의 즐거움이란 나의 '친구'예수님을 위해 나의 목숨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단번에 목숨을 내던진다는 뜻이 아니라, 마음을 다해 주님 및 주님이 관심을 가지신 다른 사람을 위해 나의 삶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전기 『순종』에 보면 1907년 챔버스가 일본으로 가는 배 안에서 몇몇 청년들을 만나서 했던 경험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청년 들은 7명의 예일대 학생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세상을 아주 즐겁게 사는 청년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성경을 읽고 영적인 것에 마음이 열려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챔버스는 영적인 대화 이후에 그들과 더 어울릴 수 없었다고 하죠.
그때의 경험을 그는 일기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는 우리가 자신들의 상황 외에는 다른 삶의 상황을 다 이해할 수 없음을 확신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종이 되려면 바울처럼 각 사람에게 자신을 맞출 수 있는 인품이 필요하다
『순종, 오스왈드 챔버스 전기』

 

그러면서 고린도전서 9장 19절 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
19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바울은 단 한 가지 목적만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주님을 믿게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언제나 사람들을 자신이 아니라 주님께로 사로잡히게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
22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한 줄 노트1
자기 애착을 가진 사람을 하나님이 쓰실 수는 없습니다. 

 

2. 사랑에 빠질 때

바울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희생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어디를 가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삶을 마음껏 사용하실 수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는 사람을 쓰실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처럼 바울은 예수님께 헌신하였습니다. 기쁘게 희생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일까요?

바울이 헌신하는 동기는 예수님과의 사랑이었습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 9:3. 너무 과장된 표현입니까? 사랑에 빠진 자라면 이렇게 말하는 것은 과장이 아닙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사랑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챔버스의 창세기 강해에서 이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여러 면에서 사악하고 못된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못된 야곱에게 순결하고 맑은 기간이 찾아왔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삶에 이러한 기간을 주시면 잘 기억해 두라.
창세기 29장 20절처럼 인간의 순수한 사랑에 대하여 그렇게 잘 묘사한 곳은 없을 것이다.
사랑을 하게 되면 그 대상을 위하여 아무리 수고와 희생을 많이 하더라도 그 수고와 희생이 전혀 의식되지 않는다.
만일 의무적으로 수고와 희생을 지르면 고통과 속상한 마음이 생긴다.
사랑의 속성은 받는 것이 아니라 아낌없이 주는 것이다.
사랑에 빠진 자에게 그가 사랑의 대상을 향하여 치른 대가를 생각해 보라고 하면
그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창세기 강해, 오스왈드 챔버스』


한 줄 노트2
사랑에 빠졌다는 증거는 기꺼이 ‘신발떨이개가 되어도 괜찮습니다’라는 마음입니다.

묵상 질문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꺼이 쓰실 수 있는 유용한 도구인가요? 오늘 우리는 누구에게 기꺼이 ‘신발떨이개’가 되었나요?

나의 묵상

어제의 묵상이 영 와닿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늘도 그렇습니다.

다만, 사랑에 빠진 사람이 어떠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고, 또 제 목숨보다 아끼는 아이들이 있으니까요.

 

바울의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말도 이해됩니다. 아이들이 나를 사랑하지 않게 되더라도, 아이들의 나쁜 버릇을 고치기 위해서 엄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저의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것이 사랑입니다. 다만, 아이들의 유익을 위해 조절을 하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관심을 가지는 모든 사람들에게 제 모든 것을 다 줄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내야겠죠. 그리고 제가 기쁨 안에서 할 수 있는 선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사랑에 빠지는 과정 그리고, 사랑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인위적으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에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제가 예수님을 존경한다. 혹은 믿는다고 할지라도, 사랑하는 정도는 아닙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님께서 그냥 주시면 제일 좋겠습니다만.. 그게 언제 주실지도 모릅니다.

이 부분을 계속 생각하다 보면, 죄지은 마음이 생겨서 불편합니다.

 

주님, 오늘도 불경하게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주님에 대해 계속 알아나가면 언젠가는 사랑하는 마음이 생길까요?

저는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인내하고 기다리겠습니다. 

주님, 언젠가는 제게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길..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